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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 인터뷰

슈퍼전파자 vs 인플루언서

국내굴지의 출판사인 '민음사'가 최근 의미있고 유용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편의 편지>이란 이메일 메세지를 통해 수준높은 지식을 전파하고 있다. 19번째 '슈퍼전파자vs인플루언서' 란 주제로 전개한콘텐츠는 사업자들에게도 유익하리라 여겨 일부를 발췌 소개한다. 

 

 

 

우리 몸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미생물이 살고 있다. 소화를 돕고, 면역 반응을 조절한다. 암을 막거나 우울감을 줄여 주기도 한다. 그들은 악의를 가지고 우리 몸에 침입한 것이 아니다. 미생물은 단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생명 활동을 하는 생명체일 뿐이다. 오랜 세월 같이 살면서 숙주와 기생체는 공생의 길을 닦았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허풍쟁이와 익살꾼도 필요하고, 진지한 선비와 사려 깊은 숙녀도 필요하다. 뭔가 이유가 있으니 오랜 진화사 동안 다양한 양식으로 공생하며 적응해 온 것이다. 하지만 모든 미생물이 평화로운 공생의 길을 도모하는 것은 아니다. 미생물은 숙주가 죽으면 같이 죽기 때문에 큰 위해를 가하는 미생물은 진화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진화적 원칙을 벗어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빠른 전파 속도다. 숙주가 죽더라도 그보다 빨리 다른 숙주를 찾아내면 그만이다. 그래서 치명적 병원균은 인간이 정주 생활을 시작한 이후에 주로 나타났다. 많은 사람이 도시에 모여 살면서 ‘악의적’ 병원균도 나름의 살 길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이런 경향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정보의 세계도 역시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헛 정보를 남발하는 사람은 곧 평판을 잃는다. 주변 사람은 그의 이야기를 듣기는 하되 귀 기울여 따르지는 않는다.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자연스럽게 신뢰하는 정보와 헛 정보에 대한 균형이 맞춰진다. 그런데 활판인쇄술은 이런 미묘한 균형을 깨어 버렸다. 또한 인터넷 세계는 터무니없는 가십을 입에 달고 사는 수다쟁이가 활동할 영역을 거의 무한대로 넓혀 주었다.

 

그동안의 방송이나 언론이 사회적 신망을 얻은 자의 정돈된 의견을 효과적으로 나누는 수단이었다면, 인터넷은 그런 진입 장벽을 사실상 완전히 무너뜨렸다. 강력한 인플루언서가 된 수다쟁이는 엄청난 성능의 확성기를 쥐게 된 셈이다.

 

젊은 사람들은 온종일 디지털화된 언어로 소통하고 대화한다. 자극적인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하는 인플루언서의 발언은 밴드웨건 효과, 그리고 인터넷의 강력한 재전송 기능에 힘입어 순식간에 수천, 수만 배의 파급력을 가진다. 물론 때로는 사실도 아니고 올바르지도 않은 이야기다.

 

 

시가지에서 퍼레이드를 벌일 때, 행렬 맨 앞에는 큰 소리로 사람을 불러 모으는 악대 차량이 배치된다. 대중의 관심을 끌려는 것인데, 이 악대 차량을 영어로는 밴드웨건(Bandwagon)이다. 그래서 대중적으로 유행한다는 사실 때문에 어떤 정보가 힘을 얻는 현상을 흔히 밴드왜건 효과라고 한다. 보통 당선이 유력한 후보자에게 표가 몰리거나, 소비자가 시장 지배적 상품을 더 선호하는 현상을 말할 때 사용된다.

 

이때 정보를 듣는 모든 사람이 피해자가 된다. 마치 치명적 병원균이 숙주를 희생하더라도 높은 전파력을 통해 번식을 도모하는 전략과 흡사하다. 그리고 이런 인플루언서들이 바로 정보화 세계의 슈퍼전파자다.  (글 :박한선)    [출처 : 민음사 '한편의 편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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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한선은 신경인류학자이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다.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인간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 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을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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