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쿤 중국 법인 카페(tqooncafe.cn) 서비스가 시작됐다. 티쿤 중국 법인은 카페를 통하여 티쿤식 해외직판을 소개하고 해외직판에 관심 있는 중국 이용사를 모집하고 잠재 이용사와 소통할 예정이다. 티쿤은 국내에서는 네이버 카페를 이용하여 기존 이용사, 잠재 이용사와 해외직판 관련 소통을 하고있다. 지금까지 중국에는 카페와 같은 서비스가 없었는데 중국 카페는 티쿤이 직접 개발한 서비스로 국내의 네이버 카페, 다음 카페와 비슷하다. 티쿤은 이용사와 소통을 위하여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았지만, 카페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카페는 다수의 참여자가 댓글 형식만 쓸 수 있는 블로거가 아닌, 직접 글을 올려서 대중과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티쿤은 국내에서 네이버 카페를 이용하여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 티쿤이 직접 개발한 카페를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네이버 카페를 계속 사용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티쿤 중국 카페는 티쿤 일본 카페(tqooncafe.jp)에 이어 2번째로 머지않아 칠레, 호주, 말레이시아, 미국에 티쿤 카페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
지속가능한 발전을 목표로 수많은 기업들이 탄생한다. 저마다 꿈을 안고 노력하지만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기업은 소수에 불과하다. 일찍 문을 닫고 사라지는 기업과 소비자의 마음을 얻어 오래남는 기업들의 차잇점은 무엇일까? 지금도 노력을 거듭하는 기업들의 노력을 격려하는 뜻으로 중앙일보 좋은 기사를 공유하기로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하는 것에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 브랜드란 무엇일까요? 이제 브랜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세대가 무엇을 입고, 먹고, 즐기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큰 과제가 되었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세상에 브랜드의 적응 가능성을 끊임 없이 높여야 하죠. 그도 그럴 것이, 과거에는 뚝심있게 본질을 지키는 일관성 있는 브랜드가 시대를 대표했다면, 이제는 필요에 따라 빠르게 변화하는 카멜레온 같은 브랜드가 오랫동안 살아 남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국내 최대 브랜드 커뮤니티인 Be my B는 지속 가능한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적응 가능한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바로 디지털 시대에 맞게 한 끗 다른 브랜딩 방식으로 체질 개선에 성공한 브랜드와의 만남을 통해서죠. 그간 만났던 브랜
네이버 '인플루언서 검색' 은 네이버가 새롭게 선보이는 창작자 중심의 검색 서비스다. 특정 키워드에 대한 검색 결과에 창작자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키워드 챌린지’와 창작자의 다양한 활동과 관심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인플루언서 홈’으로 구성돼 있다. 인플루언서 검색 정식 서비스에서는 기존의 비공개 시범 서비스 기간에 했던 뷰티, 여행뿐 아니라 리빙, 푸드, 게임, 패션, 스포츠, 자동차, 육아, 반려동물 등 10개의 카테고리로 확장했다. 키워드 챌린지의 참여 키워드도 1000개로 늘렸다. ‘인플루언서 검색’의 주제 카테고리와 ‘키워드 챌린지’ 참여 키워드는 그동안 네이버 블로그, 동영상, 포스트 등을 통해 사용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주제와 검색어 패턴을 분석해 선정됐다. 인플루언서 검색의 검색결과는 팬 수와 조회 수와 더불어 콘텐츠의 최신성, 업데이트 주기 등 다양한 팩터를 종합적으로 반영해서 적용된다. 다음달 3월 2일부터는 인플루언서 검색 창작자를 대상으로 보다 강화된 창작자 보상 프로그램이 가동될 예정이다. 인플루언서 검색에 참여하는 창작자는 300명 이상의 팬을 보유하면 자신의 ‘인플루언서 홈’에 광고 게재가 가능하다. 광고 효율성이 높은 프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 22.4%에 달하는 초고령 지역, 인구 10만 명당 사망률 전국 1위, 인구소멸지수 전국 최하위…. ‘나이든 전남’을 웅변하는 언어들이다. 청년은 떠나고 노인만 남아 있는 전남의 시골은 활력이 없고 황량하다. 군데군데 빈집은 늘어 가고 텅 빈 동네엔 흙먼지가 날린다. 시골의 사막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광주에서 차로 40여분 거리에 위치한 담양군 월산면 월평리도 같은 처지였다. 전체 35가구 중 28가구가 폐가로 방치돼 있었다. 마을 청년회장은 71세 할아버지다. 마을엔 잿빛 절망이 감돌았다. 이 마을에 언제부터인가 웃음이 퍼지고 있다. 그림자가 걷히고 삶의 온기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서울 청년들의 창의적 도전이 마을을 변화시켰다. 서울 홍제동에서 리노베이션 기반의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노리터’가 시작한 농촌마을 재생 프로젝트인 ‘담양 노리터’ 프로젝트 덕분이다. ◇산뜻한 게스트하우스로 변신한 시골 폐가 담양군 월산면 월평리 입구에 들어서면 깔끔하게 정돈된 길옆으로 알록달록한 벽화가 그려진 담벼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회색빛이었을 담벼락은 해바라기, 동백꽃들로 수놓아져 있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니 마당이 딸린 단아한 집들
온라인멘토링은 (예비)창업자의 창업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실시간 멘토링을 통해 해결하기 위해 구축된 영상 기반의 '온라인 멘토링 서비스'다. 온라인멘토링을 통해서 원하는 멘토를 검색해서 화상멘토링을 할 수 있다. 창업자분들이 멘토를 검색해서 신청하시면 시간을 조율하고 화상으로 멘토링을 하는 시스템인데 2020년 부터는 창업지원원에서 이 온라인멘토링 시스템을 통해서 멘토링이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한다. 창업진흥원 온라인멘토링 바로가기 --->
무한한 경쟁 시장, 품질만큼 강력한 힘이 또 있을까요. 여성 패션 아이템 인터넷 쇼핑몰 미셀라니(회사명:꼰시기컴퍼니)를 운영하는 서양숙 대표는 품질에 대한 자부심을 무기로 양말과 스타킹 등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실패와 위기의 순간을 겪기도 했지만 자영업지원센터를 통한 현장체험 덕분에 서서히 성장궤도에 오르는 중입니다. 전문가라는 자신감으로 내디딘 첫걸음, 그리고 잇따른 위기 창업 전 스타킹 전문 업체에서 관리 업무를 하며 오랜 노하우와 경험을 쌓은 서양숙 대표. 2년 전에 자체 브랜드 미셀라니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쇼핑몰을 오픈했다. 전문가라는 자부심을 안고 스타킹과 양말, 스카프 등 여성 패션 아이템을 주력으로 선보이며 야심차게 시작했다. 결과는 승승장구였다. 창업 당시 겨울 시즌과 맞물려 매출이 쑥쑥 오른 것. 직원을 3명이나 고용할 만큼 매출이 좋았지만 머지않아 위기가 찾아왔다. “처음엔 반응이 좋다가 봄이 되니까 매출이 점점 떨어지더라고요. 아이템들이 주로 겨울 시즌 용품이기에 봄과 여름에 판매할 수 있는 다른 아이템이 필요했습니다. 어떤 아이템이 좋을까, 생각하다가 가방을 만들게 되었어요. 독특하고 예쁘면 된다는 생각에 화가 그림을 프린팅한 가방을 제
현지화 독립점 해외직판 방식은 효용이 입증되었습니다 티쿤은 자본금 3억7천만 원의 작은 회사입니다. 쿠팡, 옥션, 지마켓, 11번가, 카페24 등 온라인쪽만 해도 티쿤의 몇십 배, 몇백 배 규모 회사가 즐비합니다. 그런데 티쿤은 이 작은 규모로 2019년에 29개 전상점이 연매출 1억 원 이상을 올리게 도왔고, 이중 3억 원 이상이 18개, 5억 원 이상이 무려 14개가 되도록 도왔습니다. 티쿤은 그 어렵다는 화장품 등도 이 방식으로 성공하도록 도왔습니다. 티쿤이 성공을 도운 전상점들이 취급하고 있는 아이템은 스티커, 명함, 공기간판, 실사출력물, 비닐봉투, 컵, 플라스틱 카드, 책자, 용기, 부직포백, 의류 부자재, 파일, 택배박스, 자석 스티커, 테이프, 공기간판, 마우스 패드, 네일아트 용품, 모자, 포스트잇, 화장품, 알루미늄 가방, 블라인드, 거울, 패션 등 특별하지 않은 제품들입니다. 티쿤은 특별하지 않은 물건으로 성공하도록 도운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티쿤 말고도 현지화 독립점 방식으로 한국옷을 일본에 천 억원 이상 파는 디스카운트사가 있고, 중국에 1500억 원어치를 파는 (주)에이컴메이트가 있습니다. 국가의 중소기업 온라인 수출 전략으로
전역을 한 달 남겨두었을 때 일이다. 이모부가 지방 일정으로 집에 와 있었다. 그는 모 기업 회장으로 전남 도청에서 중국 바이어들과 미팅이 있었다. 제대 후 별다른 대책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모부나 따라가서 뭐라도 보고 들으면 지금보다는 낫겠지 싶어 동행을 자처했다. 말 한마디 섞기 어려운 이모부에게 무슨 용기가 나서 그런 제안을 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이모부는 흔쾌히 허락했다. 도청 앞에는 검은색 세단이 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의전을 받으며 내리는 너덧 명의 사람은 모두 중국인이었다. 수행원들만 50여 명쯤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 통역을 듣는 인이어에 의존한 채 2시간의 긴 회의를 참관했다. 현장의 포스에 짓눌려 숨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참관 말고 참여하고 싶다는 욕구가 치솟았다. 전역하자마자 중국어학원부터 등록한 이유다. 공대생, 무역에 매력을 느끼다 휴학하고 중국의 작은 도시인 황산으로 어학연수를 갔다. 외국인이 몇 안 되는 작은 학교여서 공부에만 집중 할 수 있었다. 1년 후 광주대학교로 복학했지만, 다시 교환학생을 신청해서 중국 서안으로 갔다. 문화를 이해하기엔 시간이 부족해서였다. 나는 인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기들이 귀국하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