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8 (토)

  • 맑음동두천 25.9℃
  • 맑음강릉 31.6℃
  • 맑음서울 26.5℃
  • 맑음대전 27.0℃
  • 맑음대구 29.2℃
  • 맑음울산 27.4℃
  • 맑음광주 27.8℃
  • 맑음부산 24.0℃
  • 맑음고창 ℃
  • 맑음제주 25.0℃
  • 맑음강화 22.6℃
  • 맑음보은 26.3℃
  • 맑음금산 27.7℃
  • 맑음강진군 25.3℃
  • 맑음경주시 30.3℃
  • 맑음거제 24.4℃
기상청 제공

재도전은 쉼 없이 달리는 것

드라마와 현실은 완전히 달랐다. 더 독하게 집중

.

양원호 대표는 DHL이라는 다국적 물류회사에서 법인 세일즈 업무를 했었다. 그는 영업이 성격이 맞는 천직이
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어떤 아이템이든 영업만 잘하면 성공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과감히 퇴사를 결정했다. 마침 친구 가운데 한 명이 패션 광고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양원호 대표가 영업을 책임지겠다며 자신감으로 의기투합해서 첫 사업을 시작했다.


“한 2년 정도 운영한 것 같습니다. 어린 나이에 자신감에 차서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보던 걸 따라 했습니다. 좋은 사무실을 얻고 고급 외제 승용차를 굴리면서 겉모습에 치중했습니다.”


첫 사업은 패션 브랜드 광고 기획과 마케팅 사업이었다. 영업도 영업이지만, 시각적인 결과물이 뛰어나야 했고, 나름의 광고 인프라도 갖춰야 했다. 하지만 자신감 하나만 가지고 뛰어든 사업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수주해 제작한 결과물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5천만 원 프로젝트를 수주하면 적은 비용을 들여서 그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 광고 마케팅 사업입니다. 그런데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경험이

나 인프라도 없었고, 만들어낸 결과물도 신통찮았던 것 같아요. 게다가 일을 주

는 스포츠 브랜드 관계자들에게는 좋은 이미지를 주고싶어 겉모습에만 치중했

어요. 당시에 압구정동에 40평짜리 사무실을 냈는데, 월세만 330만 원이었어

요. 그러니 비용은 계속 늘고 재정은 마이너스였죠.”


새로운 도전도 했다. 광고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것을 벗어나 직접 스페인 의류

브랜드 하나를 국내에 론칭하는 사업도 시도했다. 그러면서 더 많은 자금이 필

요했다. 물건을 들여와야 했으니 말이다. 급하게 융통할 자금은 친구들에게 빌

렸다. 친구들은 양원호 대표를 믿고 두말없이 빌려줬다. 그렇게 융통한 자금이 

3억 원 정도였다. 그렇게 1년이 지나니 미래가 불투명했다. 수익구조도 불투

명했고, 재정은 계속 나빠졌다. 무엇보다 이쪽 일을 계속하기에는 실력이 많이

모자란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업을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봤던 대로 한 것 같았습니다. 허세가 심했어요.

사업이 무엇인지, 사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획도 없었고 잘 알지도 못했습

니다.”


사업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

 

양원호 대표는 사업 실패 후 이어진 정신적 충격으로 아주 힘들었다. 무엇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을 빌려줬던 친구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친구들에게 빌린 돈만 2억 5천만 원이었다. 폐업하면서 1억 원은 갚았지만, 나머지 돈은 갚을 길이 없었다. 그래서 정신이라도 차리자는 생각에 운동을 시작했다. 국내에 막 들어온 ‘크로스핏’이란 운동이었는데, 이 운동은 유명 다국적 스포츠 브랜드가 후원하는 운동이었다.


“이 운동을 하면서 제가 경험하고 느낀 걸 블로그에 올렸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뒀던 모양입니다. 스포츠 브랜드 쪽에서도 이걸 보고 크로스핏 마케팅을 함께 해보자고 제안하더라고요. 정말 우연히 재기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당시 신용문제로 금융거래가 어려웠던 양원호 대표는 일단 모친 명의로 사업을 시작했다. 피트니스 영상과 사진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업이었다. 회사 이름은 ‘투애니나인’이었다. 2013년 1월 첫 매출이 발생하고 사업이 빠르게 안정화됐다.  2014년 중반에는 신용을 회복했고, 그해 9월에 당당히 자기 이름이 들어간 법인을 설립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사무실 없이 3년간 회사를 운영했습니다. 매일 아침 함께 일하던 직원 3명과 커피숍에 모여서 노트북컴퓨터로 일을 보고, 흩어지는 식이었죠. 그렇게 고정비용을 줄이니 흑자도 나고, 일도 잘 풀렸습니다.”


첫 사업 실패에서 단단히 배운 교훈은 그에게서 허세를 걷어냈다. 실속을 추구하고 일에 집중했다.

 

합병, 그리고 도전의 확장

 

중소벤처기업부와 창업진흥원의 지원사업도 때마침 이뤄졌다. 사업을 하면서 발생하는 급한 자금 융통을 창업진흥원 지원 자금으로 매꿀 수 있었다고 양원호 대표는 말한다. 재도전 성공패키지 지원사업이 있었기에 버텼고, 버틴 덕분에 흑자 라는 결실을 볼 수 있었다.


“재도전 성공패키지에 참여하는 분들을 보면서 창업진흥원 같은 지원기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상당수가 인생의 바닥까지 경험한 분들인데, 창업진흥원 지원사업이 없었다면 무언가를 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겁니다.”


양원호 대표가 친구들에게 재기했다고 얘기한 시점은 한참 뒤였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누적 매출이 20억 원을 넘기고 나서야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남았던 빚을 이자까지 쳐서 모두 갚았다. 물론 술도 건하게 샀다.

 


“이 친구들이 있었기에 빠르게 재기를 결정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직장생활을 해서는 빚을 갚을 길이 없었으니 무조건 사업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은 돈을 갚기까지 4년 동안 어떤 독촉도 하지 않고 묵묵히 믿고 기다려줬어요. 정말 고마운 친구들입니다.”

 

양원호 대표는 투애니나인을 운영하면서 피트니스 대회를 주최하는 나바코리아를 알게 됐고, 이 협회 송재민 대표와 피트니스 사업의 방향성을 두고 의견을 나누다가 의기투합하게 됐다. 대중의 관심이 커지는 피트니스 대회라는 원천 콘텐츠를 양원호 대표가 해온 영상과 사진 같은 2차 콘텐츠로 재생산하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합병한 ㈜나바는 대회 참가비, 그리고 관객 입장료, 대회 협찬사 후원금 등을 수익구조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 대회를 통해 연결된 트레이너와 인스타그램 인기 인플루언서(influencer: 유명 인스타그램 이용자) 등과 
함께 스포츠 브랜드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추가적인 매출을 내고 있습니다.”


타이밍도 좋았고, 시너지로 생긴 결과는 놀라웠다. 몸짱 열풍은 뜨거웠고, 그만큼 대중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코스닥 상장기업 등 여러 곳에서 선뜻 투자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미래 성장 가능성과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투자를 받기 전까지 저 자신에게 90점 정도를 줄 수 있을 만큼 스스로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용불량이었던 제가 이렇게 빠르게 재기에 성공했다는 것이 대견했거든요. 그런데 30억 원을 투자받고 이것을 제대로 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 자금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는데, 그게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70점입니다.”

 

그래도 ㈜나바는 새로운 미래전략을 수립해 둔 상태다.기존 피트니스 대회와 스포츠 브랜드와 함께하는 마케팅 에이전시 일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 때문에 새로운 활로를 모색한 것이다. 그래서 나바코리아 대회에서 이어지는 ’나바 피트니스’라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기존 수익모델이 전문가와 선수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이 비즈니스는 일반 대중들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업을 통해 ㈜나바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은 물론, 앞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양원호  대표는 설명했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업이 잘 되는데, 나는 왜 전과 마찬가지로 힘이 들까? 사업이 성장하는 만큼 챙겨야 할 것도 그만큼 늘더라고요. 정말 잠깐 짬을 내기도 어려울 정도예요.”


양원호 대표는 아내와 결혼식도 못 올리고 신혼여행도 다녀오지 못했다. 하다못해 1박 2일 여행도 한 번 한 적이 없다. 오로지 일에 집중하고 있다. 지칠 만도 하지만 그는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재도전이잖아요. 정말 뼈아픈 실패를 경험하고 시작했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요. 또 방심하는 순간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큽니다. 그래서  스스로 더 채찍질하는 것 같습니다.”

 

[출처 : 창업진흥원]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