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1 (금)

  • 흐림동두천 13.4℃
  • 흐림강릉 16.0℃
  • 흐림서울 14.5℃
  • 대전 13.1℃
  • 대구 14.4℃
  • 울산 14.6℃
  • 광주 14.6℃
  • 부산 14.9℃
  • 흐림고창 14.6℃
  • 제주 17.5℃
  • 흐림강화 13.9℃
  • 흐림보은 11.1℃
  • 흐림금산 12.3℃
  • 흐림강진군 14.2℃
  • 흐림경주시 14.4℃
  • 흐림거제 14.4℃
기상청 제공

포커스 & 이슈

‘핵엿’이 안 팔려 몸이 달은 북한왕조

예를 들어 오늘날 중국의 집권자가 모택동의 손자였다거나, 베트남의 최고 권력자가 호치민 아들의 아들이었다면 현재 중국과 베트남이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편입이 될 수 있었을까? 다시 말해 북한이 세계경제에 편입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공산당이라고 해도 최소한의 양심 그러니까 집단지도체제라든가 하다못해 권력자의 임기라던가 뭐 그런 요소들이라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북한은 그냥 왕조나 다름 없어서, 1인 지배체제가 갖는 고유의 폐쇄성이 극대화된 상태라고 봐야 한다.

 

따라서 북이 ‘공산당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미국 주도의 세계체제에도 끼어들어가는, 님도 보고 뽕도 따는 양대 목표를 동시에 실현하기에는 베트남이나 중국보다 훨씬 어려운 조건에 있다. 

더군다나 이른바 베트남식 또는 중국식 개혁개방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10년 이상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나름 오늘에 이르른 것이라, 실제 개방 액션을 취한다 해도 뭔가 성과 부스러기 같은 게 나오려면 최소 그날 이후 10년은 걸린다고 봐야 한다(협상 정리하는 데도 10년은 걸린다고 본다).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체제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핵을 가졌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보기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내 생각에는 북한처럼 안정된 체제가 없다. 왜냐하면 자기 뒤에 2개의 큰 나라를 등지고 있고, 자기 앞에 2개의 큰 나라를 마주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큰 나라들 사이의 적대적 균형(알고보면 별로 적대적일 것도 없지만)의 틈새에 강고하게 낑겨 있는 상황에서 누가 어떻게 북한을 쳐들어간단 말인지? 대체 무슨 위협을 느낀다는 건지? 이해가 안된다.

 

.

북한이야말로 미국의 군사행동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나라이다(더군다나 미국은 원래 북한에 개뿔도 관심이 없다). 북한이 다른 공산당과 달리 3대세습까지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렇게 안정된 권력기반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고래등 사이에 끼어있는 상황이 대외적 위협을 핑계로 내부 권력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권력의 유지 측면에서는 더 좋은 상황이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북한은 전 세계적 흐름 속에서 체제 자체가 도태될 것 같은 불안감을 느꼈고, 그 결과 미국을 상대로 관계 전환을 압박하는 전략을 도입했다. 이를 위해 개발된 정치 상품이 핵무기였다. 즉 관계개선을 구걸하지 않고 관계전환을 압박하겠다는 기획의도 아래 도발적 상품으로 핵을 개발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처음부터 (쓸 수도 없는 핵을 ) 정치상품으로 개발한 것이기 때문에 값만 후하게 쳐서 받는다면 충분히 버릴 수도 있다(논리적으로는). 따라서 종전선언은 사실 아무 의미가 없고, 북한 입장에서 최대 성과는 북미수교일 것이다.

 

반대로 북한핵에 중국이 기분나빠했던 이유는, 핵미사일이 실수로 베이징쪽으로 날아올까봐 걱정했다기보다는 핵을 매개로 북-미가 국교 수립으로 이어지고 결국 기존의 3대3 패싸움 구도가 흐트러질까 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놈들이 빨리 값을 쳐줄 생각은 안하고, 자꾸 딴청을 피우면서 세월아 네월아 한다는 점이다. 북한은 더럽게 화딱지나는 상황이다. 그런데 모든 장사는 파는 놈이 안달하면 더 안팔린다.

 

북한 입장에서는 설사 계획대로 핵엿을 떡으로 바꿔먹었다 해도 사실은 걱정이 태산이다.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발담그는 일은 그 자체로 왕조국가에게는 엄청난 모험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북한은 ‘권력유지+자본주의 편입’을 동시에 달성하기가 중국이나 베트남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다. 이게 저들의 딜레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려운일을 한번 해내겠다는 일념으로 이 지랄 저 지랄 해보려 하는데 핵엿을 사줄 놈은 딴청이나 피우고 있으니 이래저래 속이 터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북한도 뭔가를 당장 서둘러야 할 만큼 급박한 상황은 아니다.

 

알고보면 왕조 체제는 매우 강고한 체제다. 북한에는 야당 즉 ‘대안 권력’이 없기 때문이다(왕조는 일단 들어서면 몇백 년은 후딱 간다). 권력은 대안없이 무너지기 힘들다. 북한은 TV에 나오는 정치인이 김씨 딱 한 사람뿐이라서, 설사 쿠데타를 일으켜도 대안으로 내세울 정치인이 아무도 없다.

 

요컨대 국외적으로는 배후에 중국이 있어 미국이 쳐들어올 일도 없고(지금은 땅 따먹는 시대도 아니다), 국내적으로는 잠재적 경쟁자의 씨를 말려놓은 상태라 별 위협요인도 없다.

유일한 위험은 체제 모순이 대중의 가슴속에 누적되다가 어느날 예상치 못하게 급속붕괴하는 상황안데 그 같은 장기 위험요소를 관리하기 위해 핵의 매도 타이밍을 언제로 잡을지? 언제까지 버텨야 제값을 받을 수 있을지 아마 그거 놓고 머리 싸매고 고민하고 있을 거다.  이래저래 시작만 20년은 걸릴듯  (글 : 홍기표)  [출처 : 제3의길]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