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내게 던지는 질문이 하나 있다. “장례 문화가 쉽게 바뀔까요?” 천년 동안 이어진 습속(習俗)이 쉽게 고쳐질리 없다. 나도 안다. 하지만 나는 그 때마다 서현(서울대 건축가)교수의 이야기로 답한다. “세계의 문화사가 증명하되 가장 변화 저항이 강한 것이 장례문화다. 그런데 한국은 매장이 화장으로 바뀌는데 한 세대도 필요치 않았다.” 이를 뒤집으면 세계가 못할 일을 한국인은 해낼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한 세대’가 가기 전에 반드시 뒤집어질 것이다. 한국민족의 성질이 뭔가? ‘한다면 한다.’ 그것도 매우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국제통화에서 한국의 국가번호는 82다. 전기통신연합(ITU)이 어떻게 알고 이 번호를 부여했을까? 한국인의 급한 성미를 못 견뎌 82를 부여했다지 않은가? 두 번째 많이 받는 질문이 있다. 장례문화에서 꼭 바꾸어 놓고 싶은 것은 무어냐는 것이다. 나는 한 마디로 말한다. “놀이 문화의 회복”이라고. 지구촌에 장례놀이를 그토록 성대하고 진하게 하는 민족은 우리밖에 없다. 밤새도록 슬픔에 잠긴 상주를 위로하는 가무극놀이를 한다. 출상 전날 밤 제청놀이가 대표적이다. 비통해 하는 상주를 웃기기 위하여 재담이나 노래, 우스운 병신춤
손주가 할머니에게 장난친 줄 알았다. 아니었다. 70대 아들이 95세가 된 어머니와 보낸 일상이었다. 아들이 말했다. “95세 된 어머니는 한글을 깨우치지 못했어요. 하지만 영어로 조크를 하셨어요.” 나는 최근 이들 가정의 장례 감독을 맡았다. 죽음에는 3 막이 아닌 ‘3 장(葬)’이 따른다. 첫째는 장지(葬地), 둘째는 장례(葬禮), 셋째는 장후(葬後)다. 많은 사람들은 첫째부터 어긋난다. 밤 11시에 돌아가시고 나서야 다음 날 장지(葬地)를 구한다고 설쳐댄다. 그만큼 장례는 허겁지겁이다. 이장(移葬)이 다반사(茶飯事)인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장례(葬禮)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이라 대부분 장례지도사가 하는 대로 끌려간다. 깜깜이다. 장후(葬後)는 더 심각하다. 유산배분, 장례비용 결산이 가족갈등을 일으킨다. 원수로 갈라서기도 한다. 장례노동 후유증에다 그간 쌓였던 감정들이 폭발한다. 볼썽사나운 꼴이 연출된다. 한 집안의 폭망이다. 불 보듯 뻔하다. 이래서 상(喪) 당했다고 하는 것일까? 죽음이 평생 가정사역에 천착(穿鑿)해 온 내게 외면할 수 없는 주제가 된 이유다. 20여 년 간 매달렸다. 그리고 맡게 된 엔딩 플래너로서 장례 감독, 흥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