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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둘러싼 국제관계 가상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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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한일 국교정상화 자체가 ‘한국이 일본에게 식민지 시절에 부당하게 엄청난 피해를 입었으니, 거기에 대한 배상이 있어야 한다’는 대전제를 깔고 있다. 그리고, 실제 한일협상 진행 과정에서는 일본측의 “오히려 우리가 받아내야 할 게 더 많다”는 논리는 뒤로 물러서고, 한국측의 주장과 논리를 얼마나 반영하고 배려하느냐는 문제를 둘러싸고 논의가 진행됐다.

 

이렇게 성립한 한일 국교이기 때문에 두 나라 관계는 본질적으로 ‘한국이 더 남는 장사’라는 성격을 갖고 있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어도, 이 기본 전제는 바뀌지 않는다. 패러다임 자체가 뒤집어지지 않는 한 그렇다. 총체적으로 한일수교 이후의 한일관계는 한국이 갑질하고, 일본이 거기에 끌려오는 구조였다고 봐야 한다.

 

물론, 일본도 적지 않게 얻어낸 게 있다. 하지만, 이건 일반적으로 국가 간 선린 외교관계에서 오는 상호혜택의 성격에서 크게 벗어나는 게 아니었다.

 

한일관계가 파탄나면 당연히 일본도 피해를 본다. 하지만 일본의 피해는 단기적인 성격이 강하다. 장기적으로는 전망이 불투명하다. 한일관계 파탄은 그 자체로 동북아에서 유지되던 국가간 균형이라는 기존 패러다임의 폐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망 자체가 무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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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일본은 항상 중국→ 한국→ 일본으로 이어지는 어떤 문명의 흐름,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듯한 기본 질서를 인식하며 살아왔다. 일본인들의 세계관에 아직까지도 매우 큰 흔적을 남기는 요소라고 본다. 일본의 근대화는 이런 세계관에 균열을 내면서 본격화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태평양전쟁 패전으로, 일본의 근대화 시즌1은 실패작 또는 미완성으로 귀결됐다. 미국과의 관계 위에서만 성립 가능한 일본의 현재 위상은 기형적이다.

현재의 일본은 근대화 시즌2에 대한 자기 그림이 없는 상태라고 본다. 고의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현실은 그렇다. 한일관계의 파탄은 일본이 근대화 시즌2의 구상과 실현으로 본격 나아가게 되는 첫걸음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일본의 구상이 철저하게 미국의 지원과 협력 위에서 이뤄진다는 것이 태평양전쟁 당시와는 다른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지만, 미국 외교의 기본노선은 개입주의가 아닌 몬로주의 즉 고립주의이다. 2차대전 이후 달러의 금태환을 포기한 상태에서는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석유 태환성을 유지(석유의 결제수단으로 달러만을 사용)해야 했고, 그런 전제 위에서 중동에 대한 개입 레버리지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제 미국은 그럴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한다. 쉐일가스 때문에 중동 등 산유국의 전략적 가치는 거의 사라졌다. 미국이 개입할 필요는 사라지는데, 세계의 경찰 지위를 유지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진다. 무엇보다 미국 내 분위기가 그런 개입을 용납하지 않는다. 해외 분쟁사태에 개입해 단 몇백 아니 몇십 명만 죽어도 정권이 위협을 느낀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국제질서의 대안은 무엇일까? 내가 보기에 그건 미국 본래의 먼로주의로 회귀하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처럼 보여도 그건 실은 피상적인 현상일 뿐이고 실제 내용은 업그레이드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새로운 고립주의는 과거와 다른 함의를 갖는다.

 

전세계 갈등 주체들을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다. 지들끼리 지지고 볶고 서로 때려잡으라고 기획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갈등을 해소하도록 하는 것이다. 무서운 가능성이지만, 미국으로선 이게 현재의 세계 질서를 재편하는 가장 손쉽고도 경제적인 방법이다. 미국이 개입해서 비효율적으로 비용과 군사력만 낭비하는 것보다, 지들끼리 싸워서 정리하게끔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일종의 차도살인이다.

 

다만 몇 가지 예외는 있다. 가령 중국 같은 나라들이다. 이런 경우 그냥 방치해두면 위험하다. 지나치게 영향력이 커져서 미국의 영광스러운(?) 고립조차 위협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안은 각 지역의 파트너에게 관리를 위임하는 것이다. 일종의 동네 자경단이다. 이들이 동네 양아치들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도록 권위와 능력을 부인하는 방향으로 갈 것 같다. 자경단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개입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위치와 능력만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영국과 일본, 인도, 호주 등이 그런 지역 파트너 후보가 된 것으로 보인다. 폴란드처럼 알아서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하는 나라들은 말 그대로 거래 차원에서 미군이 주둔해줄 수도 있다. 그건 미국에게도 합리적인 비즈니스 차원에서 선택 가능하다고 본다.

 

암호화폐는 그런 미국의 전략을 실현하는 또 다른 도구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될까?

 

이 문제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제가 있다. 한국은 독자적인 플레이어가 될 수 없는 나라라는 점이 그것이다. 적어도 현재 상황에서는 그렇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누구의 관할 아래 들어가느냐 하는 점이다. 지금 한국에서 전개되는 모든 갈등과 대립의 근저에는 여기에 대한 견해 차이가 있다. 대륙세력에게 붙을 것이냐, 해양세력의 일원이 될 것이냐 하는 선택을 둘러싼 갈등이다.

 

한반도는 분명 지정학적으로 가치있는 땅이다. 다만, 그 지정학적 가치는 본질적으로 중국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다. 중국은 서해를 내해화하는 데에 사활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그래서 미국이 중국의 견제를 강하게 의식한다면, 한반도를 포기하기 어렵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비용 문제이고, 우선순위의 문제이다. 지금처럼 한국에 골치아픈 정권이 들어서면 한반도 관리 비용과 리스크가 급격하게 증가한다. 미국이 이런 비용과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한반도에 남아있으려 할까?

 

미국에게 한반도는 중국 변수를 제외하면 독자적이고 사활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땅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별로 세금도 안 내는 주제에 민원만 많고 시끄러운 프로불편러에 가깝다. 그렇다면 동네 자경단에게 그 처리를 일임하는 것이 좋은 선택일 것이다. 즉, 일본이다.

 

일본은 한반도에 미국보다는 훨씬 중요한 관심과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이렇게 쓰고 보니 결국 19세기의 카스라-태프트 밀약이 재연될 것이라는 전망이 되고 만다. 지정학적 구도라는 게 간단히 바뀌는 게 아니니 이런 결론이 나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20세기는 결국 일본의 한반도 장악으로 시작됐는데, 21세기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과연 일본은 1세기 전처럼 한반도 장악에 이어 대륙 진출이라는 꿈을 꾸게 될까? 1세기 전만 해도 대륙이 빈공간이었고, 일본 근대화의 꿈을 펼치는 데 필수불가결한 공간이었겠지만, 지금도 그럴까? 21세기의 대동아공영권은 과연 어떤 무대를 꿈꾸게 될지 궁금하다.

 

토착왜구 운운하는 무리들은 간절하게 이번에는 역사의 전개가 대륙세력이 승리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길 원할 것이다. 한 가지 단언한다면, 그들의 바람대로 역사가 흘러갈 경우 그 결과는 20세기의 그것보다 훨씬 파괴적이고 잔인하고 비극적인 것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최종적으로 한민족이 ‘드디어’ 소멸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글: 주동식) [출처: 제3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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