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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세상

성경 창세기의 진짜 주인공은 누구인가 ? -주동식

창세기의 가장 중심적인 인물은 누구일까?

아브라함도, 이삭도, 유다도, 요셉도 중요하지만 내가 보기에 창세기의 진짜 주인공은 야곱이다.
우선 창세기 50장 가운데서 야곱이 등장하는 장면은 25장부터이다. 그리고 마지막 50장까지가 그의 무대이다. 창세기에서 가장 많은 서술을 할애한 것이 야곱의 생존 시기이다.

 

물론, 25장부터 50장까지 줄곧 야곱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등장하는 장면이 압도적으로 많지는 않다. 야곱이 그의 형 에서에게서 장자권을 훔치고(?), 외삼촌 라반에게 몸을 의탁하여 레아와 라헬이라는 아내를 얻고 12아들을 얻는 장면까지가 그의 하일라이트이고, 나머지 장면에서는 그가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는다.

 

야곱은 형 에서에게서 장자권을 훔쳤지만, 그 장자권으로 인해 두드러진 혜택을 봤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외삼촌 라반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올 때 야곱이 보인 행동을 보면 그가 얼마나 형 에서의 보복을 두려워했는지 알 수 있다. 야곱은 심지어 자신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을 앞세워 위험을 피하려 한 행동까지 보여준다. 

 

형 에서는 오히려 그를 너그럽게 용서하는 형제애와 장자다움을 보여준다. 과연 장자권을 가져온 것이 야곱에게 무슨 이익을 가져다 주었을까?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으로는 야곱이 에서보다 앞선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야곱의 삶은 고난과 배신, 환멸의 연속이다.

 

 

사랑하던 딸 디나가 히위 족속 추장에게 강간을 당하고, 그의 아들들은 거기에 대해 복수를 한답시고 속임수를 써서 히위 족속을 몰살시킨다. 야곱이 그 아들들의 잔인한 행동에 치를 떨고 후환을 두려워했다는 사실을 창세기는 기록하고 있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은 두번째 아내 라헬이었지만, 라헬은 둘째 아들 벤야민을 낳다가 난산으로 죽는다. 그의 맏아들인 르우벤은 라헬의 시녀이자 야곱의 첩인 빌하와 간통한다. 창세기는 이 장면을 매우 짧게 언급하고 지나가지만 그때 야곱이 느꼈을 배신감과 고통은 끔찍했을 것이다. 그 사실은 그가 죽음이 임박하여 아들들을 축복할 때에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라고 말한 데에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야곱이 그의 삶에서 느꼈을 고통의 절정은 그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 라헬의 아들이자 또 야곱이 노년에 가장 사랑했던 아들 요셉의 죽음에 직면한 장면이었을 것이다. 물론 요셉이 실제로 죽은 것은 아니다. 그는 이집트로 팔려갔을 뿐이다. 하지만, 야곱은 다른 아들들의 거짓말로 인해 요셉이 죽은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그가 겪은 심리적 고통은 요셉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봐야 한다.

 

그렇게 심리적인 고통을 겪었지만 그렇다고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보장된 것도 아니었다. 인생 초년기에는 거대한 부를 쌓기도 했지만 온갖 삶의 굴곡을 거치다가 오히려 그의 말년에 엄청난 가뭄과 흉년으로 인해 먹을 것을 구해 아들들을 이집트로 보내야 했다. 한마디로 일가가 굶어죽을 처지에 봉착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 더, 아들들을 이집트로 보내면서도 야곱은 요셉의 아우 베냐민은 함께 보내지 않는다. 창세기는 이 부분을 ‘그의 생각에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려워함이었더라’고 표현한다. 이는 요셉이 형들에게 살해당했을 거라는 의심을 야곱이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가장 사랑했던 아내는 일찍 죽고, 맏아들은 자신의 첩과 간통하며, 가장 아꼈던 아들은 형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아끼던 딸은 이민족에게 강간을 당하고 거기에 더해 잔인한 학살극까지 벌어진다.

 

한마디로 야곱의 삶은 도대체 평안함과 여유와 풍요로움과는 거리가 멀다. 이쯤되면 도대체 야곱이 꼼수를 써가면서 형인 에서에게서 훔쳐온 그 장자권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무슨 축복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인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야곱과 에서의 아버지인 이삭은 야곱을 에서라고 착각하고 다음과 같은 축복을 해준다.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그런데 저 축복은 어디로 갔는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 그 축복이 직접 야곱에게 전해졌는데, 야곱의 실제 삶은 온통 고난과 비참, 환멸의 연속이지 않은가?

 

나는 이 의문에 대한 대답이 창세기 47장 7~10절에 나와있다고 본다.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나그네길 백삼십년 동안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야곱이 직접 고백한 이 서술처럼 야곱의 삶을 정확하게 묘사한 표현이 있을까?

 

험악한 세월 130년을 보냈지만, 야곱은 당당하게 바로를 축복하게 된다. 또, 바로를 축복하는 자리에 섰지만, 실제로 130년 삶은 험악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랄지,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랄지 하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장자권으로 압축되는 하나님의 축복의 진짜 내용과 야곱으로 대표되는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께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의 내용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 하지만 하나님은 그 모순을 자신의 섭리의 질서 안에서 완벽하게 조화시킬 수 있고, 끝내 승리하시고야 만다는 사실을 고백할 따름이다.

야곱은 죽음에 임하여 아들들을 불러 축복한다. 그 가운데서 가장 두드러진 것이 유다에 대한 것이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

 

유다에 대한 축복은 이스라엘의 왕권이 유다 지파에서 나오며, 궁극적으로 예수님이 유다 지파에서 나오시게 된다는 것을 예언한 것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비열한 수단으로 형의 장자권을 훔쳤지만, 실제로 야곱이 그 장자권으로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세속적 기대와는 가장 거리가 먼 대가를 얻었을 뿐이다. 인생의 마지막에 그 모든 고통에 대한 해답과 해결을 보게 되지만, 이미 그것은 세속적인 쾌락과는 거리가 먼 보답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장자권을 통해 약속하신 진짜 축복,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축복을 야곱은 자신의 입으로 전해주게 된다. 하나님은 야곱의 인간적인 욕구에 근거한 요구는 완벽하게 때를 씻어서 안겨주시고, 진짜 축복만이 야곱의 삶의 최종적인 답을 통해서 드러나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야곱이 창세기의 진짜 주인공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야곱의 모습이야말로 이 세상의 욕심에 근거해 하나님께 요구하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방식대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며, 결국 하나님이 승리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모델이 야곱일 것이다.  (글 : 주동식)  

 

[출처 : 제3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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