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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라인

‘효은상조(주)’의 과거 현재 미래

정직과 성실 일관, 한국의 중국동포 사회에 모범

★중국동포들의 한국진출과 활동 현황

 법무부가 2018년 6월 말 기준으로 작성, 발표한 출입국통계월보에 따르면 국내 거주 외국국적 동포는 85만9609명이다. 중국동포에 국한하여 체크해 보면 중국동포(조선족)는 83.3%인 71만5953명으로 여기에 귀화 조선족 14만 명을 합하면 약 85만 명이 넘는다. 이들 가운데에는 방문취업 21만5891명, 재외동포(F-4) 32만3853명, 영주(F-5) 8만9241명 등 총 62만8985명이 합법적인 신분으로 일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날이 갈수록 더 심화될 것이 예상되어 한국 거주 중국동포의 위상도 비례적으로 높아 질 것이 분명하다.

 

한국과 중국이 1992년의 수교를 계기로 중국 동포의 국내 유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9년 '재외동포의 출입국 및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후부터였다. 재외동포가 국민에 준하는 법적 지위를 부여받고 근로를 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을 계기로 중국 동포의 국내 유입도 활발해졌다. 또 2005년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재외동포법) 개정, 2007년 방문취업제도 시행 등으로 당시 불법체류 신분이던 중국동포들의 지위를 합법적으로 보장,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했으며 2010년 동포기술교육제도를 시행해 자격증 취득 뒤 취업할 수 있도록 동포교육지원단을 만들어준 것 등 다양한 지원 정책에 힘입은 바 크다.

 

한국을 찾는 중국동포는 2007년 방문, 취업제 시행 이후 급격히 증가했고, 초기에는 건설과 제조, 주방 보조일 등 3D업종에 주로 종사했다. 중국동포들의 한국 진출 목적을 살펴보면 한국에 나가 돈을 벌어서 고향에 가겠다는 것이 과거 추세였다면 최근에는 아예 한국정착을 목표로 직접 창업과 비즈니스에 뛰어드는 경우도 많아졌다. 지난날의 “밑바닥 조선족“이란 인식이 사라지고 부동산 투자 성공 등으로 중산층에 진입하여 고급 승용차를 모는 사업가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한국 사회에서 성공한 중국동포들은 대체로 한국 정부의 배려에 감사를 표하고 있다. 이들은 중국동포들에 대한 한국인의 부정적 시각을 개선하고, 배려 받은 만큼 지역사회에 보답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기도 하다. 중국어와 한국어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북한과의 교류에 유리한 입장 등 앞으로 남북통일과 발전을 위한 주요 역할에 대한 기대와 각오의 자세까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수도권 지역 중국동포들의 활동 중심지는 영등포 지역인데 그중에도 대림동의 ‘차이나타운’이 주요거점이다. 대림동이 오늘날처럼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은 거주민 80%가 중국동포이며 이들과 연계되고 있는 전국 방방곡곡의 중국동포들이 이곳을 찾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곳에는 중국동포들이 주축이 된 기관, 단체, 동호회가 밀집되어 있고 여행사, 행정사, 휴대폰 매장, 미용실, 취업 소개소, 환전소, 부동산 등 사무실들이 다양하게 입주해 있다.

 

 

★효은상조주식회사

 

 대림동 차이나타운의 중심 거리에 ‘효은상조의전’이 자리하고 있다. 효은상조(주)’의 주요업무는 중국동포들의 상,장례 등 가정의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다. 뿐 만 아니라 중국 동포들의 출입국 및 안정적인 정착과 관련된 각종 절차의 안내자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본지는 중국동포들을 향한 정직하고 성실한 봉사로 명성을 얻고 있는 사업체 현장을 찾았다.

기자가 1층에 자리한 사무실을 들어선 순간, 고객접대와 전화 상담 등으로 분주한 모습이 시야에 들어와 안정적으로 정착된 사업체라는 분위기가 우선 느낌에 와 닿았다. 상호가 의미하는 상조, 장례업무 외에도 동포 고객들의 다양한 니즈에 전문적으로 응대하는 종합 라이프서비스 개념의 사업체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가 있었다.

 

★코리안 드림

 

‘효은상조(주)’ 이동욱 대표는 흑룡강성 출신 중국동포다. 청년시절 할빈에 진출한 한국기업에서 통역 등 일을 돕고 있었는데 직접 코리안 드림의 꿈을 안고 한국행 비행기를 탄 것은 2001년이었다. 중국동포들의 한국진출 붐을 타고 먼저 나와 있던 부모의 뒤를 이은 것. 당시만 해도 한국 진출이 쉽지 않아 1000만원이란 거금을 들여 어렵게 입국한 초창기,그러나 그의 꿈과 소개자의 말과 달리 그를 반겨 맞아 줄 인맥이나 기업체가 있을 리 없었다. 당시 중국동포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한 상황이라 거의 1년 동안 하는 일 없이 지냈다.그러나 언제까지나 그런 상태를 지속할 수는 없는 일,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라도 업종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을 손에 잡았다. 지방 소재 공장직공, 식당배달원, 실내골프장 안내원, 레스토랑 주차요원 등을 거쳐 마지막에는 대형 중화요리점 주차요원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곧 홀써빙으로 옮겼고 그의 성실한 자세가 사장의 신임을 얻어 지배인의 자리까지 오르는 등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그러던 그가 직업적인 운명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할지, 2005년도 들어 거주지 인근 모 장례식장에서 장례업무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일단 관련 경험이 없으니 조문객 접대음식을 나르거나 실내 청소를 하는 일이 그의 처음 일이었다. 그러면서 틈나는 대로 상례사(입관사)의 입관하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보면서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신의 체력이나 적성에도 맞는 일인 것 같아 내가 할 일은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조회사 입사

 

본격적으로 보다 많은 것을 배워보려는 생각에 대형 상조회사인 ‘P라이프’에 입사한 것은2006년 10월이었다. 그때까지 보고 배우고 손에 익힌 기량을 인정받아 의전팀장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일단 그는 슬픔에 잠긴 유족들에게 도움이 되어 줄 수 있는 장례일이 좋았다. 업무교대로 밤잠을 설치는 등 여건이 좋지 않았으나 그래도 고달픈 줄을 몰랐다. 무엇보다 성의를 다하는 그의 봉사에 유족들이 만족해하며 감사의 뜻을 보여 줄 때마다 뿌듯한 보람을 느꼈다.

 

그는 업무 능력 향상과 더 많은 것을 배워 보고자하는 향학열이 생겨 동국대불교대학원 장례비즈니스(FBA)과정에 입학하여 열심히 공부하며 업계 인재들과 폭넓은 교류를 가지게 된 것도 이때였다. 또 동문이나 신문사에서 실시하는 해외 견학에도 가능하면 참가하여 글로벌 문물을 접하는 것도 그에게는 즐겁고 유익한 일이었다. 한편, 그 즈음에는 상조회사들의 경영부실과 이에 따른 소비자 피해의 대량 발생으로 인한 당국의 규제로 상조회사들의 통합, 폐업이 줄을 이으면서 소속 의전담당 직원들의 이합집산이 빈번하던 시기였다. 이동욱 대표도 2008년 7월, ‘P라이프’를 퇴사하고 의전업을 창립한 친지를 돕게 되었다. 이때의 현장 경험과 기획력으로 서비스상품 구성과 업무시스템에 대한 이론과 실무 능력도 더욱 정립되어 갔다.

 

★독자 창업

 

이동욱 대표는 2009년 3월, 중국동포들을 주고객으로 하는 ‘효은상조(주)'란 사업체를 대림동에서 창업했다. 큰 희망을 품고 개업은 했지만 사업을 개시한 첫 6개월 동안 사무실 유지비도 마련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힘들었다. 그러나 비록 어렵더라도 고객에게 부담되지 않는 실용적인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정직과 신의를 다짐하며 버텨 나갔다. 턱없이 부족한 사무실 유지비와 생활비는 상조회사 등의 의전을 맡아 그 수입으로 보충했다. 그런 한편 중국동포의 어려움을 도우며 공생하겠다는 의미로 모든 것이 생소하기만 하던 중국동포들에게 출입국 수속절차, 본의 아닌 불법체류의 법적인 해결, 비자 발급 절차 등을 성의를 다해 도왔다. 또 형편이 어려워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동포들에게는 필요한 용품 구매와 장례식장 소개 등 최대한 편의를 제공했고 때로는 무료 장례를 위한 행정수속을 맡아 해결해 주기도 했다.

 

또 동포고객과 상담에 임할 때는 한 건의 장례를 치르는데 따른 최저한의 인건비 등을 솔직하게 공개하고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성실한 자세로 일관했다. 그러자 정직하게 성의를 다하는 '효은상조의전'의 진가를 차츰 알아주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런 각고의 노력이 해가 가면서 쌓이고 쌓여 10년이 지난 지금은 연 300건 정도의 실적으로 안정적인 운영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10년간 ‘효은상조(주)’와 이동욱 대표가 끝까지 지켜 나온 소신이 있다면 인간적으로나 비즈니스 차원에서나 오로지 '정직'을 경영신조로 삼은 일이었다.

 

★아픈 사연

 

'효은상조(주)’ 이동욱 대표가 장례 일에 뛰어 든 것은 자신의 체력과 적성에 맞는 일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가슴 아픈 경험이 큰 원인이기도 하다. 2004년 11월, 먼저 한국에 나와 고생하시던 부친이 병으로 돌아 가셨다. 당시 집안사정은 무척 어려워 반지하 방에 부친의 시신을 모셔놓은 상태에서 막연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다고 집에서 치를 수도 없어 어쩔 수 없이 인근 장례식장에 부친의 장례를 의뢰하게 되었다, 어려운 가정형편이었지만400~500만 원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으나 정작 장례식장이 내민 계산서는 무려 2배가 되는 900만원이었다. 

 

그는 크게 충격을 받았지만 낯설고 물 설은 외지 이방인에게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감사하게도 친지들의 도움으로 비용문제를 해결했지만 이때의 경험이 그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었다. 장례업계의 정직하지 못한 이윤 챙기기가 유족당사자들에게 얼마나 힘겨운 부담이 되는지 실정을 알게 되었다. 청운의 꿈을 안고 한국에 건너와 갖가지 어려운 현실과 부디쳐 나가는 자신과 같은 중국동포들의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실감하게 되었고 도움이 되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중요한 계기였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상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유족들이 처한 형편에 과도한 부담이 되지 않는 적절한 비용 등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영 이념

 

지난 10년간 상조의전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끝까지 지키는 소신이 있다면 인간적으로나 비즈니스 차원에서나 '정직'을 제1가는 신조로 지키는 일이었다. 효은상조(孝恩喪助)’란 상호에는 고인의 은혜에 보답하는 상례(喪禮)를 정직하게 돕는다는 뜻이 있다. 효은상조의전'은 중국동포들이 믿고 의뢰하는 사업체란 입지를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 웃돈 사절은 물론 추가비용 발생으로 고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정직과 최선의 봉사정신으로 일관하고 있다. '효은상조의전'은 지금도 경영상의 애로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성실일관으로 능히 극복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한다. 장례를 처음 겪는 동포고객들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상담이나 영업 직원 채용에서도 동포 출신을 우선으로 하고 있으며 이들에게 무엇보다 정직과 성실로 최선을 다해 봉사하는 자세를 가르치고 있다. 현재 100만 명에 가까운 중국동포들의 수치는 서울 영등포, 구로, 금천, 관악 등에 약 1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대림동만도 1만 여 명이 넘는다. 이들에게 첫째도 정직, 마지막도 정직, 오직 정직 하나를 기본 신조로 봉사하며 성실하게 자리를 지켜 가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중 장례문화

 

 이동욱 대표와의 대화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그러나 바쁜 업무에 과도한 지장을 주어서는 안 될 일, 끝으로 우리 장례업계 현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표님은 중국과 한국에 동시에 살아 본 당사자이신데 중국의 장례문화, 장례관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예, 아시다시피 중국은 워낙 땅이 넓고 다양한 소수 민족들이 넓은 지역에 혼재해 있어 그 풍속과 의례관행이 많이 다르고 특히 50개 가까운 소수민족들은 그들 나름대로 전통관행이 근본부터 독특합니다. 또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체제여서 획일적이고 강제적인 법제도의 통제하에 있기 때문에 개성적인 전통을 전수하며 실천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따라서 중국의 장례문화 역시 다양성이 없이 획일적인 경향이지만 최근에는 많이 개방되어 장례장소를 정할 때 장례식장 또는 자택 중 선택이 가능합니다. 또 경제의 발달로 부를 이룬 소수 부유층은 호화장례식을 치르거나 호화가묘를 조성하는 예가 많이 눈에 띄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는 어떻게 보십니까?

 ☞“예, 한국의 경우, 전통을 중시하는 유교장례를 비롯한 종교별 장례식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있지않습니까? 근래 상조회사 등 대형 장례업체의 점유율이 높아 가면서 시간이 갈수록 장례식 자체가 형식화 비즈니스화 되어가는 느낌입니다. 편의성 추구, 이윤추구 등의 우선 추구 등이 그것입니다. 물론 시대의 트렌드에 따른 의식의 변화가 주된 원인이기는 하겠지만 국가공인 자격증을 소지한 장례지도사들의 근무자세 또한 형식적이고 비즈니스화되어 가는 경향이 보입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전통 미풍인 '상부상조'의 근본정신만은 퇴색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요. 의전 종사자들도 기계적인 사고방식에 젖어 행사 접수, 출동, 상담, 실행 및 종료. 그리고 정시 퇴근 등..특히 대형 상조회사 중에는 사무적이고 기계적인 근무 시스템에서 진실한 봉사정신을 찾아 보기가 쉽지 않은 풍조가 있기도 합니다. 이제는 우리 장례지도사들이 국가공인자격을 가진 직업인의 긍지를 가지고 고객들에게 진정으로 다가가 정직하고 성실하게 상담하고, 최선을 다해 봉사하겠다는 자세를 공유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 밝은 미래

 

낯설었지만 조국인 한국 땅에서, 갖가지 애환을 겪은 당사자로서,

또 중국동포들에 대한 애정을 소중히 간직한 기업으로서,

한중 양국의 우호친선과 상생발전을 위해서,

정직 성실 최선을 다해 나갈 ‘효은상조주식회사’의 앞날에 밝은 미래가 계속 될것을 믿으면서 장시간의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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