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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이슈

왜 중국은 한국 화장품을 따라올 수 없는가?

중국과 한국의 각기 다른 '문화대혁명'

천안문 사태가 일어난 지 30년이 흘렀다. 천안문 사태에 대한 역사적 평가 관련 국내 한 신문 기사의 제목이 눈에 띈다. '경제는 살리고 정치는 죽인 천안문 30주년', 크게 동의하는 문장이다. 시진핑이 중국이 모든 방면에서 '굴기'를 내세우고 있고, 문화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2016년 11월 중국문학예술계 연합회 대표회의에서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문화부흥의 시기'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에는 다른 어떤 산업보다 중국이 '문화산업' 만큼은 굴기가 어려울 듯 하다.

 

중국 소비 시장의 특징이 수요와 공급의 Gap이 크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제품에 대한 눈높이는 이미 글로벌 탑 수준에 와 있는데, 현지에서 공급할 수 있는 제품의 퀄리티는 현저히 떨어진다. 화장품의 경우 그 차이를 글로벌 브랜드와 글로벌 ODM 업체들이 들어가 메우면서 고신장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드라마나 여러 문화상품 시장도 유사한 현상을 보이고 있는 듯 하다. 중국 10~20대(이른바 빠링허우/지우링허우)의 문화상품에 대한 수요는 굉장히 크지만, 중국 현지에서 공급할 수 있는 문화상품의 퀄리티는 현저히 떨어진다.

 

 

그 원인을 구조적 측면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 문화상품을 제작 공급하는 중심 세대는 40대다. 이들이 태어난 시기는 1970년 전후다. 이때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1966년~76년)'이 있었다. 다양한 사상이나 철학, 문화에 대한 일체의 접촉이 차단되었다. 중국 특유의 제자백가적인 다양성이 사라지고, 오로지 공산주의 사상만이 시대를 지배했다. 이들의 어린 시절은 사방이 공산주의와 억압으로 꽉 눌려 있었다.

 

이들 나이 20대에 천안문 사태가 있었다. 자유를 갈구하던 1989년 천안문 대학생들 시위대를 끝내 탱크로 눌렀다. 개방을 했지만, 경제만 열었다. 물질은 풍부해졌지만, 문화의 저수지는 바싹 마르게 되었다. 현재 중국 경제 주축인 40대 기성세대의 어린 시절과 청년기는 문화적 측면에서는 암흑기였다. 사상에 자유가 제약된 환경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문화컨텐츠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부유하게 자랐고, 인터넷과 여행으로 전세계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게 된 중국 10대~20대의 수요와 눈높이를 맞출 수 없는 것이다.

 

무한도전 '토토가' 등에서 1990년대 음악들을 다시 만나면 가슴 한켠에 느껴지는 뭉클함 가운데, 20대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사실에 새삼 놀랐다. 음악의 다양성이다. 힙팝과 락, 발라드와 R&B, 테크노 등 다양한 장르가 한꺼번에 공급되었고, 소비자들은 그걸 다 흡수했다. 동시대에서 서로 다른 장르가 1등을 왔다갔다 했다.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K-팝의 모든 것'을 보면 K-팝의 시작은 지금부터 24년전 1994년으로 거슬러 간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작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10년 전에는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이 있었다. 1990년 초중반은 그만큼 한국 사회문화적 변화가 컸던 시기다.

 

 

1980년대까지 한국도 군사 독재정권이 있었지만, 중국 정도는 아니었다. 중국이 공산주의만 가능했다면, 한국은 공산주의만 빼놓고 다 가능했다. 1980년대 후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루면서(개발 도상국 가운데 거의 유일하면서 이례적인 사례로 전세계 사회학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한국의 개방은 더욱 확대 되었다. 소련과 동유럽 공산 국가까지 수교를 맺고 무역을 시작하면서, 정치/문화/사회적으로도 한층 자유도가 상승했다. 1992년부터는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대학생들은 학생운동 대신 배낭여행을 갔다. 대부분 유럽이었다. 높은 경제성장으로 취업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무엇보다 구속을 싫어한 자유로운 몸과 영혼들이었다.

 

1990년대 미디어 컨텐츠들을 보자. 장군의 아들(1990), 초록물고기(1997), 쉬리(1998),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등 일련의 영화들은 한국 영화의 장르를 넓히고 작품성을 올렸다. 이후 한국 영화계는 박찬욱, 봉준호, 나홍진 등 기라성 같은 감독들이 우수한 작품들을 내놓으며,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고 있고, 현재 한국은 전세계에서 미국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자국 영화 점유율이 1위를 하는 시장이다.

 

여명의 눈동자(1991년), 모래시계(1994년), 허준(1999년) 등 우수

한 작품들이 시대의 아픔을 소재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으며, 한

국 드라마 수준을 한단계 올려놓았다. 2010년대 들어서 별에서

온 그대(2014), 태양의 후예(2016), 시그널(2016), 도깨비(2016), 미

스터선샤인(2018) 등은 글로벌 시청자를 향하고 있다. 로맨스를

주제로 한 애틋한 사랑, 미묘한 감정선의 전달, 삶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은 '한드'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팩트와 추리

의 짜맞추기 스릴러에 식상한 미국 시청자들이 한드로 채널을

돌리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전세계 드라마 등 방

송컨텐츠 수출에서 미국과 영국에 이어 3위(2.2조원, 2018년)에

오르고 있다(미국 24조원, 영국 4조원 추정)

 

1990년대 한국에서는 다양한 문화 컨텐츠가 한꺼번에 분출됐고, 소비자들은 이를 모두 스폰지처럼 빨아들이면서 소비했다. 경제적 풍요와 문화의 다양성이 접목되면서 각종 문화컨텐츠가 실험되고, 생산 저변이 확대되면서 인프라가 깔리기 시작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자본과 시장이 만들어지면서, 문화 상품이 확대 재생산될 수 있는 시스템이 형성된 것이다. 현재 한류의 근본 바탕에는 1990년대, 한국의 또 다른 '문화대혁명'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는 한류가 중국에서 상당히 오래 지속되고 있고, 앞으로 될 수 있는 문화적/구조적 측면이 아닐까 한다.

 

2014년 ‘천송이 틴트’로 소문 난 입생로랑 립스틱은 강남 소재 백화점 등에선 ‘없어서 못 파는 제품’으로 통했다. 2015년 1분기 립스틱 중국 수출이 YoY 320% 증가했다. 2016년 초 '태양의 후예' 효과로 3~4월 중국권(중국+홍콩)향 화장품 수출이 큰 폭 증가했다. 1~2월 누적 YoY 10% 증가에 그쳤던 중국향 수출 증가율이 3~4월 YoY 40% 이상으로 뛰었다. 덕분에 한국 화장품 수출 규모가 한단계 레벨업했다. 태양의 후예 효과를 통계청에서도 공식적으로 기정사실화할 정도였다. 실제로 화장품 수출 그래프를 그려보면 수출 규모가 큰 폭 증가한 때가 두 드라마의 방영일과 일치한다.

 

이제 한류는 중국을 넘어 전세계로 향하고 있다. BTS가 세계적 Pop 가수로 발돋움하면서 한국 드라마, 한국 화장품에 대한 관심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은 미국 내 세포라 매장에 입점해 미국 전역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세포라는 아예 K뷰티 섹션을 마련하였고, PB상품을 '메이드 인 코리아'로 판매하고 있다. 빌리프, 라네즈 등 단독 브랜드 매대 입점이 늘어나고 있다. 아마존도 K뷰티/패션/아이돌 굿즈 등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실제로 2018년 미국향 화장품 수출은 2014년 대비 3배 이상 증가하면서 미국의 화장품 주요 수입국 중 5위를 차지했다.

 

일본에서는 신한류다. 일본의 10~20대 사이에서 한국 화장품, 패션 등 'K스타일'을 따라 하는 성향이 확대되고 있다. 도쿄의 코리아타운은 'K팝'을 등에 업고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2018년 1분기 화장품이 일본 역직구 1위 품목으로 올랐는데, 478억원으로 YoY 856%나 성장한 수치다.  2018년 일본향 화장품 수출은 YoY 35%(3분기 누적) 증가했다. 중국 한한령은 K-뷰티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의견이 있다. 중국 정부의 숨은 의도는 K-컬처(Culture)에 대한 경계심이 깔려 있는데, 중국의 바링허우(80년대 출생), 주링허우(90년대 출생) 세대가 한류에 빠져 있어 이를 제어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화장품 소비에 문화적 측면이 있는가? 물론이다. '문화'가 가장 많이 흡수되어 무형의 가치로 작용, 가격과 판매에 적용될 수 있는 대표적 유형상품이 패션과 화장품이다. 화장품은 가성비보다 다른 이미지나 부가적인 요소가 구매 결정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품목이다. 일반적으로 판매 가격에서 50% 이상을 브랜드 이미지 가치로 본다. 자동차나 휴대폰처럼 엔진의 성능이나 CPU 속도 등 주로 가성비를 구매 기준으로 하는 소비재와 다르다. 사실 가성비가 판매에 압도적으로 중요한 품목은 제약/바이오라고 할 수 있다. 미국 FDA 3상만 통과되면, 병원 전체에 판매될 수 있기 때문이다. 휴대폰이나 자동차도 삼성이나 현대라는 브랜드의 의미가 없지 않지만, 결정적인 구매 요인은 결국 가성비다. 반면, 화장품을 성분표 보고 사지는 않는다. 가성비를 넘어서는, 가격에 대해 비탄력적인 요인들이 포함되어 있다.

 

코코샤넬의 패션 철학, 마릴린 먼로의 향수 샤넬 No.5, 1982년에 첫 선을 보인 에스티로더 나이트리페어는 '더 좋게 만들 여지가 없을 만큼 뛰어난 제품'으로 유명하다. 브랜드의 역사와 철학 그리고 우연한 사건과 이야기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적 만족도가 크게 소비에 작용한다. 플라시보 효과라고 말할 수도 있다. 브랜드력은 이와 같은 무형의 힘이다. 한국 화장품도 브랜드의 역사와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중국인들에게 '설화수'는 한방 화장품의 오리지널이 되었고, '이니스프리'는 신비의 섬 제주, 자연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후'는 시진핑 부인 펑리위안이 애용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황후'의 화장품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많은 한국의 명작 드라마와 배우, 가수들이 함께 주인공이 되고 있다. 사드 보복 조치로 빛을 보지 못했지만, 헤라의 광고 'HERA loves SEOULISTA'는 한류를 접목한 브랜드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브랜드 빌딩의 대표적 광고였다. 한국 화장품의 ‘혁신성’은 이 모두를 아우르는 K-뷰티의 트레이드 마크다.

 

선진국으로 갈 수록 브랜드와 같은 '소프트파워'가 경제에 중요한 덕목이 된다. 가성비가 구매 결정은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자동차나 IT는 치열한 기술 개발과 가격 경쟁의 칼날 위에 설 수밖에 없다. 언제 중국에 따라잡힐 지 모르는 일이고, 이미 서서히 가시화되고 있다. 소프트파워의 진입장벽은 기술력과 가성비에 기반한 하드파워보다 훨씬 높다. 기술이 제품이 되어 역사와 이미지까지 만들어내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술력에서 세계 초 강대국 미국이지만 여전히 패션/화장품 시장에서 Made in USA가 Made in France를 넘지 못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K-팝, K-드라마, K-시네마, K-뷰티, 한국은 산업 역사상 처음으로 소프트파워를 키워가고 있다. 문화적 우위와 지속 가능성은 중국 화장품 시장에서 한국 화장품의 브랜드력과 연속성, 한국 화장품 산업의 글로벌 확장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중국 화장품 시장에서 당분간 Made in China가 Made in Korea를 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가장 큰 이유다.

 

[출처: 유통/화장품 업종 애널리스트 박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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