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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WTO서 정면 충돌, 국제사회 전방위 외교전

韓 "정치적 보복 vs 日 "규범 위배 아냐" 격론

세계무역기구(WTO) 상품무역이사회에서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조치를 놓고 한일 양국이 정면 충돌했다. 한국은 "정치적 목적의 경제보복 조치"라고 철회를 요구했고, 일본은 "금수조치가 아니다"고 팽팽하게 맞섰다. 

 

외교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9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상품무역이사회에서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조치에 대한 부당함을 공론화했다. 

백지아 주제네바대표부 대사는 WTO 회원국들 상대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1개 국가만을 대상으로 하고, 정치적 목적으로 경제보복 조치를 취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점을 회원국들에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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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일본에 수출규제 조치의 조속한 철회를 요청하는 한편, 일본이 주장한 신뢰훼손과 부적절한 상황은 현 WTO 규정상 수출규제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백 대사는 "일본의 조치가 한국 기업뿐만 아니라 일본의 회사와 글로벌 공급망 차원에서 전 세계 전자 제품 시장에도 부정적 파급 효과가 있으며, 자유무역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조치"라고 호소하며 일측의 철회를 요구했다.

 

우리의 공세에 맞서 일본 정부도 반격에 나섰다. NHK에 따르면 이하라 준이치 일본 주제네바대표부 대사는 "안보 우려에 따른 무역 관리로, WTO 규정상 전혀 문제 없다"고 반박하면서 다른 회원국들의 이해를 구했다. 이하라 대사는 이사회를 마친 후 NHK 등의 취재에 응해 "금수조치가 아니라 안전 보장에 관한 무역 관리의 검토다. 한국에 적용했던 (무역)간소화 절차를 복구한 것으로, WTO 규정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양국 정부는 오는 23∼24일 예정된 WTO 일반 이사회에서도 일본의 수출 규제 문제를 놓고 다시 한 번 격돌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일 양국이 자국 입장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보하려는 한일 외교전이 본격화된 양상이다. 한일 간 갈등이 격화되면서 미국의 고심도 커지고 있다. 미 국무부는 8일(현지시간) 한·일 관계 경색에 대해 북한으로부터의 도전 등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과 미국, 일본 3국 간 밀접한 협력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국무부는 일본 정부가 정확한 근거 없이 언급한 화학물질의 북한 유입 의혹에 대해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한일 긴장상황과 관련해 공식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적극 중재에 나서지 않고 있다. 한미일 '3각 동맹'이란 원칙적 입장을 되풀이하며 추이를 관망하는 모양새다. 이에 따라 우리 외교·통상 고위급 당국자들이 일본 수출규제의 부당성을 알리고 미국 정부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미국을 잇따라 방문한다. 

 

김희상 외교부 양자경제외교국장이 오는 11일 워싱턴D.C.를 방문해 롤런드 드 마셀러스 미 국무부 국제금융개발국장, 마크 내퍼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등과 회동한다. 김 국장은 일본의 수출 제한 조치가 미국의 경제와 안보 이해에 미칠 영향을 설명하고 미측의 협조를 구할 것으로 보인다.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도 다음 주 미국 출장이 예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이 제3국을 통한 중재위원회 설치를 요청한 것에 대한 한국의 최종 답변 시한인 18일이 다가오면서 우리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한일 외교가에서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2차 경제보복 시점을 18일 직후로 보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전날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 정치·외교·안보·통일 분야 대정부 질문에 출석해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준비하고 있다"면서도 "오는 18일이 중요한 하나의 시점이다. 정부가 그 시점을 계기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언급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는 10일 오전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18일을 기점으로 아베 내각이 추가 보복조치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일본이 8월 중순이라고도 하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추가 규제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상황이 더욱 악화되진 않을까 매우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일본 경제산업성이 8월 중 전략물자 수출 우대국(화이트국) 목록인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1100여개에 달하는 부품·소재 수입이 차질을 빚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경우 국내 주력산업 업종 대부분이 경제 보복의 영향권 안에 들게 돼 후폭풍의 규모를 가늠하기 힘들 것이란 지적이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화이트리스트에서 삭제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한번 삭제되면 돌이키기 힘들다. 우리 경제에 큰 타격"이라며 "반도체 등 3개 품목 못지 않게 더 큰 타격으로 경제 전쟁에 가까운 갈등으로 번진다. 화이트 리스트 삭제를 먼저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가 수입 규제 강화 철회와 성의 있는 협의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양국 간 갈등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상은 지난 9일 각의(국무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이번 수출 규제 강화조치와 관련해 "한국과의 협의 대상이 아니며 철회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히토야마 전 총리는 "아베 주도 하에 이뤄지고 있는 지금의 일본정부의 강경한 자세에 대해선 어떤 형태로든 수면 하에서라도 서로 협의를 해서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양 교수는 "한일 갈등 국면이 장기화되는 것 같다. 청와대와 아베 내각이 강경 모드이고 일본 정부가 오랫동안 준비해온 조치라 허들을 금방 내리기 어렵다"면서 "일본의 참의원 선거 이후로도 양국의 강대강(强對强) 대치가 더 심해질 것이다. 우리 정부가 국제적 여론전과 대화를 병행하면서 할 수 밖에 없는데 가시적인 효과를 낼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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