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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이슈

왜 나는 우리 사회의 반일정서 거부하나 -이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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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주의는 숱한 편견을 만든다. 종족주의, 민족주의는 집단주의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것이다. 이는 종종 가족의 개념을 커다란 집단에 확대 적용한 것이고, 인류의 역사에 뿌려진 피의 대부분은 종교, 인종(민족주의), 그리고 마르크스가 시작한 이념이라는 집단주의 갈등의 피다.

 

이념 전쟁은, 한반도라는 역사에 뒤쳐진 공간을 제외하고는, 피를 흘리는 갈등 요인으로서는 소멸했고 거대한 힘을 갖던 기독교도 종교개혁 이후에 진화하면서 더 이상 피를 요구하는 갈등의 진앙이 아니다.

 

남은 것은 이슬람권의 일부 종교와 민족주의 갈등이고 세상 도처에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종족주의 갈등이다. 민주화의 성녀로 칭송받던 아웅산 수지 여사도 인종청소를 옹호해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중화주의와 소수민족들은 갈등 중이다. 미국의 정치는 대부분 인종간 갈등의 산물이다.

 


종족주의는 가족의 맹목적 사랑의 감정을 악용한다. 내게도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위안부가 니 딸이고 니 할머니라도, 징병이 니 할애비라도 그렇게 이야기하겠냐?”

 

전형적인 원시 부족의 원초적 연대감이다. 조상의 원수를 갚는 게 후손의 의무가 되면 보복의 악순환이 결코 사라질 수 없다. 아프리카 원시부족 사회의 끊임없는 전쟁의 원인도 바로 이 원초적 연대감에서 오는 보복의 악순환이 아니었던가. 

 

“니 애비는 뭐했냐?”

 

이 질문은 연좌제를 수용하는 성리학적 혈통주의에서 기인한다. 조상의 잘못을 빙자해서 9족을 멸하고 자손대대로 과거시험 응시조차 금지했던 폐족제도의 야만성이다.

 

인류역사는 이런 감정에서 우리가 탈피해야 한다고 가르쳐왔다. 그것이 현대 문명이고 개명한 것이다. 지금의 일본 사람들더러 “일제 강점기에 대한 책임과 죄의식을 가지라”는 말은 유태인이 예수를 죽였으니 처형해야 한다는 나치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

 

내가 입에 담기 힘든 욕설로 대드는 저들의 존재를 모르고 도발하는 게 아니다. 종족주의, 민족주의에 빠지면 정상적 사고가 안된다. 그 편견은 편견으로 멈추지 않고 적대감으로 바뀌고 심하면 폭력이 수반된다.

 

다른 시민들, 일본과 평화 공존 번영을 주장하는 한국 사람을 ‘토착 왜구’라고 부르는 현상은 많은 사람들이 바로 배타적, 적대적 종족주의에 매몰되었다는 증거다. 그리고 적대감으로 무장되었다는 말이다.

 

배타적 민족주의, 적대적 종족주의를 벗어나는 길은 역지사지다. 사실 모든 편견을 최소화하는 멘탈 기법이 이것이다. 일본의 일반 시민의 눈으로 우리의 행동을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지식인, 깨인 사람이 무엇인가? 바로 역지사지로 자신의 생각을 자주 의심해 보는 지적 용기와 냉정함이 있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다.  (글:이병태) [출처:제3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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