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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추모제, “비만·빈곤 공존하는 야만"

홈리스추모제, “비만·빈곤 공존하는 야만”

올해 홈리스 죽음만 166명 “동료위한 동료의 추모”, 추도사 곳곳 눈시울


올해 언론보도 등으로 확인된 홈리스 사망만 166건이다. 중앙·지방 정부가 전수조사에 손을 놔 빈곤운동 활동가들이 자체 집계한 값으로 실제론 서울에서만 300건 이상으로 추정된다. 제대로 된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한 홈리스 추모제가 22일 열렸다.

 

41개 빈곤·장애·노동·보건 운동 단체 등이 모인 ‘2019 홈리스 추모제 공동기획단’이 22일 저녁 7시 서울역 입구에서 추모제를 열었다. 추모제는 시민 3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1시간 가량 진행됐다.

무대 앞 현수막엔 올해 숨을 거둔 홈리스 166명의 영정이 그려졌다. “거리와 시설, 쪽방, 고시원 등지의 열악한 거처에서 삶을 마감한 홈리스를 기억한다”는 문구와 함께였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이는 활동가들이 확인한 숫자에 불과하다. 홈리스 사망 통계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가 2009년에 낸 자료 이후 끊겼다. 정부·지자체가 통계를 내지 않아 모른다”며 “인의협 조사 결과 2005년 서울에서만 300명, 2009년엔 350명이 돌아가셨다. 추청컨대 매년 300명 이상이 집다운 집이 아닌 곳에서 살다 돌아가셨을 것”이라 밝혔다. 

 

추모제는 이삼헌 무용가의 위령무 공연으로 시작했다. 공연 직후 동료 홈리스를 먼저 떠나 보낸 홈리스 당사자의 추모사가 이어졌다. 

 

홍난이씨는 25년 전 서울역 거리에서 처음 만난 고 정금안씨를 위해 6장에 달하는 편지를 썼다. 홍씨는 “언니는 20살 쯤 서울역에 올라왔다. 15살 때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살다가 남편의 가정 폭력과 바람 때문에 이혼하고 서울에 홀로 와 노숙했다. 나와 같이 장애가 있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다. 언니는 빈 병과 신문을 모아 팔고, 구리를 까서 팔아 나오는 돈으로 생활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나에게 컵라면, 밥, 음료수, 담배를 사줬다”고 말했다.


홍씨는 “언니는 고생 하다가 쪽방에서 심장마비로 죽음을 맞이했다. 7년 전 딱 이맘 때 언니에게 전기장판 2~3만원 주면 살 수 있으니 깔고 자라고 했는데, 말을 안 듣더니 쪽방의 찬 바닥에서 자다가 죽었다고 했다. 언니의 언니가 시신을 인수했지만 하루장만 했단다. 어디에 뿌렸는지, 모셨는지 내가 알 수 없다. 가난도, 아픈 것도 없어도 되는 하늘나라에서 편히 잠드세요”라 말했다. 

 

 

고 나승욱씨는 지난 10월께 고시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한 지 이삼일 뒤였다. 필명을 ‘행복’이라 밝힌 A씨는 나씨와 2년 전 시설에서 만나 홈리스야학에서 컴퓨터도 같이 배우고 도배학원도 같이 다니면서 동거동락했다. 지난 7월 공공근로를 시작한 나씨는 모아 둔 700만원에 300만원을 공공근로로 더 모아 1000만원을 딸에게 선물주려 했다. A씨는 “숨진 후 한참이나 고시원 방에 방치됐단 사실이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어떤 삶을 살았건 끝이 이래선 안된다. 공공기관들이 정말 필요할 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다른 홈리스의 추도사를 전하며 눈물을 흘렸다. 

 

고 연영철씨는 지난 7월7일 숨졌다. 상주를 맡아 연씨의 장례를 치른 송범석씨는 “제 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호소했다. 송씨는 연씨와 같은 쪽방 건물에서 5년 가량 살았다. 지난해 송씨는 연씨가 쪽방 3층 복도에 넘어져 쓰러져 있는 걸 발견했다. 쪽방 계단은 대부분 좁고 가파른 데다 조명도 없어 위험하다. 

 
1년 5개월 간 그를 간호한 송씨는 병원의 수술 거부를 수차례 경험했다. 송씨는 “병원들이 치료를 안 해주는 바람에 골든 타임을 놓쳐서 돌아가신 것 같다. 빨리 수술만 했음 이리 가진 않았을 것이다. 병원비, 의료기구비도 여의치 않아 정말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아랫마을 홈리스야학’ 노래 교실 수강생들이 노래 ‘얼굴’과 ‘떠나가는 배’를 불렀다. 추모제 참가자들은 이 직후 떠나가는 배의 원작 가수 정태춘씨가 무대에 등장하자 시선을 집중했다. 


정태춘씨는 홈리스 사망자를 위해 ‘서울역 이씨’를, 민중운동 진영의 활동가들을 위해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이어서 불렀다. 서울역 이씨 가사는 정씨가 2005년 홈리스 추모제 참석을 위해 급히 지었던 시였다. 정씨는 이후 멜로디를 붙여 ‘서울역 이씨’ 노래를 앨범에 담았다. 

 

정씨는 노래 사이 “여기 따뜻한 공동체로부터 떨어져나와 차갑게 죽어간, 이 세련되고 풍요로운 사회로부터 버려져 쓸쓸히 죽어간 모든 이들을 추모한다. 살을 얼리는 혹한에 거리에서 죽어간 이들, 말없이 죽어간 모든 이들을 추모한다”며 “이 비만과 빈곤의 어이없는 공존. 저 모든 거짓과 환상과 그 역겨운 문명과 시스템과 그 수호자들을 추모한다”고 말했다.

 

이어 추도사를 올렸던 홍난이씨, A씨, 송범석씨가 권리선언을 낭독했다. 이들은 “홈리스로 살게 하는 조건에 눈 감는 세상, 홈리스의 존재를 부정하는 세상, 자립과 자활만을 강요하는 세상, 부실하고 불충분한 지원만을 내세우는 세상이야말로 홈리스를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원인임을 우리는 안다”며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권리와 추모와 애도를 누릴 권리, 집다운 집에 살 권리, 제 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권리,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추모제가 끝나자 참가자 300여명은 올해 사망자 166명의 이름이 적힌 플랜카드를 들고 서울역 2번 출구부터 13번 출구까지 행진했다. 가수 정태춘씨도 다른 참가자와 함께 첫 번째 열에 서서 행진했다.  [출처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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