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몸에 대한 예의
영화 '왕의 남자'에서 어린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가 처벌을 받는다는 대사는 낯설면서도 오래된 질문을 던진다.
죽은 자에게 예를 다하는 행위는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권력은 때로 그 마지막 예마저 금지한다.
조선시대 대역죄인에게 장례를 허락하지 않고 묘지조차 쓰지 못하게 한 것은 단순한 형벌의 연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몸'을 공동체의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정치적 선언이었다.
죽음 이후의 의례를 차단함으로써, 그 존재 자체를 역사 밖으로
밀어내려는 시도였다.
고대 로마의 기록말살형, 즉 'Damnatio memoriae'가 이름과 얼굴을 삭제했다면, 조선은 몸과 무덤을 삭제했다.
그러나 인간은 오래전부터 시신을 둘러싼 예의를 문명의 척도로 여겨왔다.
아킬레스가 분노 속에서 헥터의 시신을 훼손했을 때조차, 서사는 결국 장례의 회복을 통해 균형을 되찾는다.
삼국시대 손권이 잘린 관우의 머리를 정치적으로 활용했던 일화 또한, 시신이 단순한 육체가 아니라 권력과 기억의 매개였음을 보여준다.
의료 현장에서도 우리는 다른 형태의 질문을 마주한다.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혹은 전쟁과 재난의 현장에서, 의학은 생명을 살리는 기술이지만 동시에 죽은 몸을 다루는 태도이기도 하다.
사망 선고 이후에도 환자의 얼굴을 닦고, 눈을 감기고, 가족이 마지막으로 볼 수 있도록 정돈하는 일은 치료 행위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공동체가 인간을 대하는 최소한의 품격을 지키는 행위다. 법적 처벌이나 정치적 판단과는 별개로, 몸에 대한 예의는 의료 윤리의 가장 기초적인 층위에 놓여 있다.
그래서 시신을 거두는 장면은 언제나 조용한 긴장을 품는다. 권력은 기억을 통제하려 하지만, 인간은 마지막 몸을 통해 기억을 복원하려 한다. 장례를 금지하는 법과, 그럼에도 시신을 건져 올리는 손 사이에는 시대를 초월한 윤리적 갈등이 존재한다.
아마도 문명의 깊이는 생명을 얼마나 구했는가가 아니라, 죽은 몸을 어떻게 대했는가에서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끝내 지우지 못하는 것은 이름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몸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출처 : 의협신문(http://www.doctorsnews.co.kr)

















